한국 건축물의 투명화·개방화 흐름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유리가 더 이상 단순한 외장재가 아니라 구조를 구성하는 핵심 재료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사)한국판유리창호협회(회장 이성대)가 국내 최초로 ‘구조용 유리 단체표준(SPS-KFGIA 005-7641)’을 제정하며, 건축용 유리의 구조적 안전성을 체계적으로 다루는 첫 기준을 마련했다.
이번 표준은 4월 15일 공식 등록되었으며, 유리가 충격·파손된 이후에도 일정한 강도와 지지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시험 체계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그동안 국내에 없었던 구조용 유리의 명확한 성능 프레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번 단체표준 제정은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세라믹기술원의 요청으로 2021년부터 연구가 진행된 대형 프로젝트로, 약 2년 반 동안 업계·학계·공공기관이 참여한 검토와 심의가 이어졌다. 특히 2022년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유리구조설계기준(KDS 41 80 20)’과 연계되는 성능 기반 규격으로 구성돼 있어, 향후 국내 건축물에서의 유리 적용 방식 전반을 바꿀 중요한 기준점으로 평가된다.
국내 건축시장은 최근 스카이브리지, 통유리 난간, 고층 외피, 대형 채광창 등 구조적 역할을 하는 유리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명확한 구조용 유리 기준이 없어 현장에서는 일반 강화유리 또는 일반 접합유리가 동일한 방식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협회 관계자는 “유리가 구조 부재로 작동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단순 안전유리가 투입되는 관행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파손 이후까지 성능 검증…국내 처음 도입된 ‘잔여구조력’ 중심 평가
이번 단체표준이 기존 모든 유리 기준과 차별화되는 핵심은 ‘유리가 완전히 파손된 이후’의 구조 성능까지 규정했다는 점이다.
기존 KS 기준은 충격력·낙구 시험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실제 건축물에서의 파손 후 거동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새 단체표준은 이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파손 상태에서 10분 이상 형태를 유지하는지 확인하는 원형유지력 평가 ▲점지지 유리가 하중을 받은 상태에서도 지지부에서 이탈하지 않는지를 확인하는 탈락저항력 평가를 필수 시험으로 포함했다.
특히 시험은 50℃ 이상의 고온에서 4시간 이상 승온 후 진행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는 여름철 건축물 외부 환경을 반영하기 위한 것으로, 국내 유리 시험 기준 가운데 가장 높은 난이도의 조건으로 알려져 있다.
구조적 성능 확보의 또 다른 핵심인 중간막에도 엄격한 기준이 적용됐다. 단체표준은 전단탄성계수 130MN/m² 이상의 고탄성 구조용 중간막을 요구하며, 일반 PVB로는 충족이 어렵다.
대부분 아이오노플라스트 계열 소재가 적용되며, 이 중간막은 파손 후에도 유리 조각을 결속해 구조적 지지력을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더불어 강화유리의 표면압축응력(90~110MN/m²) 규격을 명확히 제시하고, 자파를 방지하기 위한 열간유지시험(Heat Soak Test) 적용도 의무화했다. 중간막과 유리의 장기 접합 내구성 역시 필수 항목으로 포함되어 있어, 기술력 부족 업체들은 인증 충족이 어렵다.
구조용 유리 시장…이제는 본격 성장 단계 업계의 기술적 준비가 관건
전 세계 접합·구조용 유리 시장은 이미 200억 달러를 넘는 규모로 성장했으며, 구조용 유리의 비중은 약 16%에 이른다. 반면 국내 시장은 여전히 5%에도 미치지 못하고, 고급 구조용 유리의 상당 부분을 해외 완제품에 의존하고 있다. 협회는 “구조적 안전이 필요한 부위에 일반 접합유리가 사용되는 사례가 여전히 많아 시장 안전성이 취약하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건축 설계 트렌드가 국내로 빠르게 유입되는 상황에서, 국내 구조용 유리 수요는 향후 급속히 증가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이번 단체표준을 기반으로 한 인증제도가 정착될 경우, 초고층 건물 외피, 랜드마크 스카이워크, 공공 건축물 난간, 아파트 발코니 등에서 구조용 유리 적용이 크게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국내 가공업체들은 고탄성 중간막 라인 구축, 고온 환경 시험 대응 능력, 잔여구조력 시험 만족을 위한 공정 개선 등 다양한 기술적·설비적 준비가 요구된다. 업계 일부에서는 이미 협회에 인증 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구조재로서의 유리에 대한 시장 재편이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이번 단체표준은 단순한 시험방식이 아니라, 유리 건축물 안전 기준을 새롭게 정의하는 출발점”이라며 “구조용 유리가 시장에서 제 역할을 갖추기 시작하면, 국내 건축물 안전 수준 역시 한 단계 도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리건장신문 2025. 12. 10일자]
